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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전쟁의 역사는 인류에게 많은 피해를 주기도 했지만 예술가들에게 더 없는 예술적인 영감을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냉전시대 세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련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그중에서도 20세기 문학사와 냉전시대 세계사 모두 빼놓을 수 없는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휴대할 수 있는 것만 소유하고 언어, 국가, 사람들을 알아라, 기억을 여행 가방으로 삼아라’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소설로 알려졌으며 이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줄거리는 1951년 입소전에 평범한 농부였던 슈 호프는 독소전에 참전했을 때 포로로 잡힌 것이 간첩으로 오해받아 조국을 배신한 죄목으로 강제수용소에 입소한 지 8년이 된 인물입니다. 어느 때처럼 슈 호프는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작업을 피하기 위해 의무실을 가지만 이미 의무실 정원이 다 차서 그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식사시간이 되자 그는 배급받은 빵을 감추고 다시 작업에 나갑니다. 작업은 발전소의 집과 지붕을 만드는 일이었으며 슈 호프는 자질 구래 한 작업을 끝내고는 체자리의 잔심부름의 대가로 자기 몫에 체자리의 수프까지 받는 데 성공합니다.

 

그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운좋은 하루라고 생각하고는 잠에 든다는 내용입니다. 이 책의 작가인 솔제니친은 실제로 소련 강제 수용소에서 1945년부터 1953년까지 복역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1945년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스탈린에 대한 불손한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잡혀 들어와 10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솔제니친은 카자흐스탄에서 1957년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1962년 솔제니친은 소련 문학지였던 노비 미르에 원고를 보냈으며 당시 편집장이었던 알렉산드르 트라르돕스키는 이 소설이 수용소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고 평가하여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제출하게 됩니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이 죽고 흐루쇼프가 등장하여 스탈린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소련 체제의 현실과 부조리를 비평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은 1918년 12월 11일 러시아 테레크주 키 슬로보츠크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로스토프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이후 통신대학에서 문학 관련 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그는 1941년 독소 전쟁이 발발하고 포병장교로 자원하여 입대하였으며 적성 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스탈린의 판단력을 의심하는 내용과 조롱하는 표현이 문제가 되어 1945년 스메르쉬에 의해 동프로이센에서 체포되어 심문을 위해 루뱐카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8년 형을 선고받고 카자흐스탄의 예 키바 스투즈 굴락으로 보내졌습니다.

 

굴락에서 일반 죄수들처럼 지내던 중 수학을 잘한다고 판단되어 연구원 전용 수요소에서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수용소 당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다시 굴락으로 복귀하여 석방될 때까지 수용소에서 중노동을 하게 됩니다. 이 당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수용소 군도를 집필합니다. 그는 수감생활이 끝난 후 1953년 카자흐스탄 남부 비를 리크 마을로 추방되어 나흘 뒤에 스탈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종양이 도져 이듬해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로 옮겨져 이료를 받았으며 유형지에서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니키타 흐루쇼프의 반 스탈린주의로 그는 1956년 사면되었으며 이어 노비 미르지의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를 만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초안을 작성합니다.  이후에는 소련 관료제를 비판한 ‘유익한 사업을 위하여, 이반 데니 소 니치의 하루, 제1원에서’ 등의 수용소 생활을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소련 문단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호응을 얻은 이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소련 수용소 시스템에 대해 구체적으로 저술하기 시작했지만 소련 정부와 소련 작가연맹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으며 그를 문호가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국을 떠날 수 없다며 스웨덴으로 출국하여 노벨상을 수상하였으며 이에 소련은 재입국을 거부하였고 미국의 버몬트에서 은거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2008년 사망했으며 당시 러시안 언론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양심 중 1명이었으며 조국 러시아를 향한 긴 발걸음이 이제 멈추게 되었다라고 애도하였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그를 향해 ‘제국을 멸망시킨 작가’라고 칭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업적을 보면 펜은 칼을 이긴다고 하는 옛말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무력을 사용하고 공포로 선동하여도 정신을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우리나라 또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독신 정권 하에 무수한 문학인들이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시간들을 잘 견디어 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제니친과 같은 인물 또한 세계와 러시아의 운명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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