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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위인들 중에는 전쟁에 참여하였던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문학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전쟁영웅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인데요. 그는 독보적인 내러티브 기술과 현대 문학의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공로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허무주의와 환멸, 상처 받은 영혼을 묘사하는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을 건조한 문체로 서술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그가 만들 작품 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장편 소설은 스페인 내전을 바탕으로 로버트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을 그렸으며 1943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줄거리는 반파시스트 군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로버트 조던은 작전상 중요한 교량을 폭파하는 임무를 맡고 파블로가 이끄는 게릴라 부대에 협조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게릴라 부대에 숨어있던 부모를 살해당한 딸 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요. 그는 작전을 추진하던 중 계획이 변경되어 자신의 의무인 교량 폭파가 무의미해질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자 작전을 중단하지 않고 쓸모없는 줄 알면서도 다리를 폭파하였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 과정에서 중상을 입고 자신은 죽음에 임하게 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실제 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파리 해방 전투에 참여한 인물입니다. 그는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 파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여섯 남매 중 장녀인 성악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활동적인 인물로 낚시나 사냥을 즐겼으며 그러한 영향으로 헤밍웨이 역시 활동적인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고등학교 졸업후 1917년 지방 신문에 ‘캔자스 시티 스타’지의 인턴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1918년 적십자 일원으로 이탈리아 북부 호사 루타 전선에 구급차 운전기사로 자원하여 활동하다가 중상을 입게 됩니다. 이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토론토 스타지의 자유 기도 기자를 지냈으며 특파원으로 파리로 건너가서 거트루드 스타인과 사귀며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행동파 작가로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스트이자 후에 군사 독재자가 된 프랑코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행동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썼으며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짧은 문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을 발현하며 전쟁 이후 파리에 체류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파리의 풍요로운 예술적 토양과 자유를 즐기면서 산 문학가 집단들을 문학계에서는 잃어버린 세대라고 칭하게 됩니다. 그는 평생 인생을 격렬하고 폭력적인 마초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183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였으며 항상 끓어오르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냥이나 복싱 등 위험하고 강렬한 스포츠를 즐기고 싸움도 꽤 잘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정식 복싱 대결을 붙여주자 슬그머니 도망갔다는 지인의 언급도 있는데요. 1943년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샘 우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던 당시에도 시사회에서 영화화 수준에 불만을 품고 감독을 주먹으로 때려서 코뼈를 부러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세상에 과시하는 것도 상당히 즐겼으며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유명 연예인처럼 자신의 화려한 사생활을 노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루가 멀다하고 유명인사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고 전해집니다. 헤밍웨이는 노인이 되면서 늙어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였으며 1차 대전 당시 저승 가기 직전의 부상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말년의 비행기 사고로 크게 다쳐서 후유증이 날로 커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냥에 임할 때에도 정신착란을 일으켰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어느 이른 아침에 헌신적이었던 아내가 자게 놔둔 채 엽총을 입에 물고 쏴 자살하여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늘그막에 작품이 지지부진한 점도 자살 원인으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죽기 전 몇 달 동안 글을 쓰다가 계속 찢고 술을 마시며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그는 정신질환이 심해질 당시 자신이 도청과 감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당시 정말 FBI측에서 1940년대 쿠바에 거주한 등의 과거력을 이유로 그의 주소 변동을 예의 주시하였다고 하는데요. 1950년대에는 존 에드거 후버가 인정하였듯이 실제로 감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였습니다. 헤밍웨이는 타인보다 조금 더 낫다고 훌륭한 것이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더 훌륭해진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성공한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뛰어넘는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습관을 잘 고치지 못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변경하고 더 진취적인 방향으로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높은 인격 수준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그가 남긴 위대한 작품들은 언제나 세상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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